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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믿으세요?

노아

 

은혼

사카모토 타츠마 X 카미하츠 아야

아야와 같은 방을 쓰는 제일 어린 유녀가 손님을 맞이하러 나가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다가 펑펑 울면서 방에 돌아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새벽이었다.

일하러 갈 준비를 하던 아야는 옷도 입다 만 상태로 우는 아이를 급하게 방으로 들였다. 아이는 주인에게 들킬까봐 소리를 죽이며 울었다. 너무나도 속상하게 우는 아이에게 같은 방을 쓰는 유녀들이 몰렸다.

다들 이 아이를 어찌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아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얘, 너 바람 맞았니? 그 질문에 한참 끅끅 울다가 아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네. 자주 오시던 손님이었어요.

"여기 있으면서 그런 건 믿으면 안된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잖아. 이제 좀 알겠니?"
"하지만 분명히 저를 데리고 나가주시겠다고 그러셨는데,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말씀 하셨는데...!"
"그런 남자가 한둘인줄 아니? 이러다 주인장 오겠다. 좀 진정해봐."
"그래 여기서 그런 일은 어쩔 수 없지... 울지말고. 괜찮니?"

자신보다 조금 어린 아이에게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아야였지만 달래주던 다른 유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현실에 동의하였다. 유녀에게 진심인척 사탕발린 말들과 애정 가득한 행동을 하고 모른 척 사라지는 일은 이바닥에서 흔했다. 아야 역시 그랬고 다른 유녀 역시 한번씩은 과거에 격었던 이야기였다.

운명이니 진실된 사랑이니 별말은 다해놓고서는. 작은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조금 진정되자 되자 침대에 들어가서 훌쩍 거렸다. 아침 해가 벌써 뜬 상태였다. 그리고 아야도 슬슬 나갈 차례였다. 아야의 유녀 이름을 부르며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시오. 사카모토 씨가 오셨어."
"벌써? 그 사람 참 일찍도 온다."
"하지만 하루도 안 빼놓고 와주시잖아!"
"방금 저런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머리를 주섬주섬 틀어올리며 아야가 웃었다. 그리고 아이를 부탁한다며 말하고는 나갈 채비를 하였다.

"다녀올게요"
"그래. 이 애는 우리가 챙길게."

아야는 말 없이 이제는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조용히 한번 보고 일어났다.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안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몇번, 아니 몇십번쯤은 더 상처 받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길 바라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니 약간 기분이 울적해졌다. 어서 이 기분을 해치우고 싶었던 아야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손님을 맞이하러 발걸음을 빨리하였다.

자신을 만난 이후로 매일매일 몇주째 와주는 손님은 흔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달랐다고 느꼈다. 우주를 항해한다는 쾌원대의 함장이라는 사카모토 타츠마란 남자는 조금 특이했다. 사람을 믿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화려한 유곽의 현관 앞에서 익숙한 서성거림에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사카모토 씨!

"시오!"
"둘이 있을 때는 제 원래 이름으로 불러 주신다며요?"
"아, 여기서도 되는 거였남? 몰랐다네. 내가 너무 일찍 온 건 아닌가 아야?"

사람 좋게 하하 웃는 사카모토의 웃음 소리는 아야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카모토의 좋은 부분은 가득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것은 웃는 것이었다.

그 아이에게 독하게 이야기 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사카모토와 있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 바보같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사람 마음을 어찌 할 수 없다고 합리화 하고는 굳었던 얼굴을 애써 피려고 노력했다.

"얼굴이 영 좋아보이지 않는구만.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별 일은... 없었어요. 그냥 늘 있던 일일 뿐이에요."
"아야가 그렇다면 야..."

자신을 배려해주는 사카모토가 고마웠다. 아야는 유곽의 작은 정원으로 사카모토를 끌며 천천히 산책을 하였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술을 마시기 그럴 거라 생각한 자신 나름의 배려였다. 그리고 천천히 오늘 새벽에 있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사카모토는 아야에게 툭 질문을 했다.

"아야는 운명을 믿나?"
"유녀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요."
"음...역시 그런감?"

꽤나 단호한 말에 사카모토가 멋쩍게 웃었다. 조금 아차 싶었던 아야는 얼른 부드럽게 바꾸고 이번에는 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사카모토씨는 운명을 믿나요?"
"글쎄... 하지만 역시 믿는 쪽이지 않을까 싶구만!"
"역시 우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을까요?"
"우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글쎄... 아야는 그렇게 생각하나 보구만!"
"좋잖아요. 넓고."

나이의 절반을 유곽에서 지냈던 아야에게는 꿈 같은 우주였다. 사카모토가 좋아하는 곳이라면 분명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고 있는 장소였다. 언젠가는 꼭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찾아보고 싶다- 라는 막연한 희망도 있었다.

어떤 곳일까 하며 자신의 상상을 펴치는 아야를 가만히 보던 사카모토가 답지 않게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그렇담, 나와 함께 우주로 가볼 생각은 없겠남?"
"네?"

너무 당황스러워서 큰소리를 내버리다 놀라서 입을 다물고는 아야가 다시 작게 말했다.

"오늘은 장난이 심하시네요 사카모토 씨."
"흐음, 장난 같았나? 그렇다면 그건 아니였다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저에게는 장난 같았어요. 너무 헛된 희망을 주시는 거 아니에요?"

너무 놀라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눈을 돌리며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조만간 다시 배를 타고 가야한다네. 이 말을 하려고 일찍 왔지. 나는 아야를 두고 가는 것이 매우 걱정된다네. 나와 우주로 같이 가지 않겠나?"

순간 아침에 울면서 들어왔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대하다 떨어지는 기분은 최악인걸 몸소 당해봐서 좋다는 마음 보다는 역시 또 거짓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 생각을 하자니 손이 부들부들 거렸다. 사카모토 씨 저는, 저는 안돼요.

그 모습을 보고 사카모토가 다급하게 지금 당장은 아니고, 어쩌면 일주일, 멀게는 2주 후일테니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며 안심시켰다. 조금씩 진정하던 아야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당연하지. 조금 안에 들어가서 자는 게 좋겠구만. 내가 너무 이른 아침부터 부른게 아닌가 싶군."

원래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지만 상대가 사카모토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 밖까지 잘가라며 배웅을 해주고, 사카모토의 뒷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문 앞에 서있다가 아야는 천천히 유곽 안으로 들어왔다.

유곽 안에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던 유녀들이 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 높은 웃음 소리로 치장을 하였다. 지금 당장 웃을 힘이 없다는 걸 빼고는 아야도 제 동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아야는 약간 어딘가 나사 빠진 것처럼 지나가던 동료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야 시오? 어디 아파?"
"아니 그냥... 히마와리 씨는 운명을 믿으세요?"
"...?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말이야? 사카모토 씨랑 무슨 일 있었어?"

사카모토가 매일 아야를 찾는 것은 유명했기에 다른 동료들도 사카모토의 이름 쯤은 다들 알고 있었다. 별 일 아니라는 아야의 말에 히마와리란 유녀는 쯧쯧 혀를 차고는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런거에 넘어가면 안되는 거 알잖아 시오? 오늘 아침에 너네 방 막내가 운명한테 바람 맞았다고 그랬잖아. 마음 단단히 먹어야해."
"...그렇죠"
"그래. 그래야지."

손님이 부르자 가버리는 동료를 아야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운명을 믿냐니. 꿈 같은 소리였다. 어쩌면 오늘 아침 일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말 잘하는 사카모토 씨의 제안에 순간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밑바닥 중에서도 제일 최악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아야가 어찌 할 방법은 없었다. 운명을 믿나요? 라고 자신에게 묻기에는 아야는 운명 알 수도 없는 유녀였기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꾸욱 참고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잠을 자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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