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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계속되는 13일의 금요일

슴사

 

원피스

코비 X 코스톨라


 대령은 가만히 머리를 굴렸다. 대체 어디인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이 공간에는 서늘한 적막만이 맴돌 뿐이다. 묵직한 쇳덩이의 무게가 손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 쇳덩어리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우선은 자신이 왜 이곳에 붙잡혀 있는가, 그것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눈을 감았다. 그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 오늘은 아무데도 가지 마십시오. ”


 그날 이른 새벽, 소령이 그렇게 말했다. 대령은 뒤를 돌아보고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성실한 그 답지 않은 발언이어서였다. 그렇게 말한 소령은 슬 눈꼬리를 내리며 웃었다. 나랑 같이 있어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난인 해군에 무단 땡땡이라니. 거프 중장에게 몇 대 쯤 얻어 맞는 거야 당연한 거고, 그 전에 해군 전체에 민폐가 아닌가.

 “ 갑자기 왜 그래요, 안 될 거 알면서. ”
 “ 제발요, 부탁입니다. ”

갑자기 왠 어리광인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소령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보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창백한 듯한 얼굴이었으나 그것 외에는 별다른 것도 없었다. 흐린 새벽녘 빛에 소령의 흰 얼굴에 그림자가 잔뜩 져 있었다. 대령은 그의 연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그 얼굴에 제 손을 얹었다.

 “ 어디 아파요? ”
 “ 아프다고 하면, 가지 않을 겁니까? ”

 소령이 그 손을 붙잡는다. 대령은 제 피부에 달라붙는 온도가 차갑다 느꼈다. 소령은 그 붙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제 눈과 뺨과 코와 입술에 가져다 댄다. 뜨거운 온도를 탐닉하려는 것처럼. 순간 냉기가 발끝부터 오소소 핏줄을 타고 올라왔다. 어떤 이유에선지 소름이 돋았다. 대령은 제 손을 빼냈다. 조금 놀란 듯한 다갈색 눈이 그를 따라온다. 대령도 저 자신의 행동에 조금 놀랐다. 어째서인가. 스킨십에 놀라서? 아니다, 둘은 이것보다 더 질척한 짓도 해 왔다. 이번에는 소령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찬장을 뒤적였다. 찬장에서 주전자와 티백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소령은 주전자에 물을 끓이며 말했다.

 “ 5분 정도는 내 줄 수 있죠, 그렇죠? ”
 “ ..응, 알았어요. ”

 결국 대령은 의자에 앉았다. 삐이익 하고 주전자 물 끓는 소리가 났고, 이내 소령이 양 손에 찻잔을 하나씩 들고 다가왔다. 희멀건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운 채로. 대령은 소령이 건낸 찻잔을 한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 정말 무슨 일 있어요? 좀 걱정인데. ”
 “ ...아닙니다. 그냥....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라서. 조금 찝찝하고. ”

 소령은 손가락 끝으로 찻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훑으며 그렇게 말했다. 찬 겨울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하얀 입김 같은 어조였다. 

 “ ...혹시 악몽 같은 거라도 꿨어요? 분위기가 평소랑 달라. ”

 잠시 소령의 손가락이 멈췄다. 소령의 눈동자 색과 같은 홍찻물에 소령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춰졌다. 수면에 은은하게 드리운 미소.

 “ 따지자면, 그렇습니다. ”
 “ 그랬구나. 무슨 꿈이었어요? ”
 “ 글쎄요, 아마.... ”

ㅇㅜᅟᅮᆪ ㅇㅍ.... 아. 소령이 말을 다 끝ㅤㅁㅐㅌ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대령의 감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시각 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모두 아찔하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가를 빠르게 반복하더니, 어두워진다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모든 감각이 점멸했다. 탁, 하고서.

 

 

 끝나지 않는 13일의 금요일

 

 

 대령은 고개를 숙이지도 들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벌어진 입술이 바싹 타들어갔다. 대령의 기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소용돌이 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감각, 그 가운데 쯤에서 창백하게 미소 짓고 있던 저 자신의 연인.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감히 추론조차 할 수 없었다. 코스톨라 씨가 구속 플레이를 좋아하던가? 하고 로맨스코미디 소설 같은 전개를 떠올려보기도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도피적 성향을 띄우고 있었으므로.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했으나, 호르몬에 지나치게 솔직한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펄떡이며 피를 퍼나르고 있었다. 고요 속에서는 그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홀로 미친 듯이 울어대는 심장의 소리를 덮은 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었다. ...그는 저 발자국 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다. 견문색 패기가 아니라, 익숙함에 의해서.


 “ ...코비 씨. ”
 “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줄래요? ”
 
 뒤이어 더더욱 익숙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 낮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문 너머로 넘어온다. 목소리는, 소령은 잠시 뜸을 들였다.

 “ 보호입니다. ”
 
 보호, 라고. 답을 들었음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잔뜩 엉키고 꼬인 실타래가 발밑에서 헤집어지고 있었다. 재미 없는 장난이나 농담의 종류가 아님을 알아챈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 이러지 마요,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나 가야 하는 거 알잖아요? 내 부하들이 기다리고.... ”
 “ 죽습니다. ”
 “ 네? ”

 

 죽는다고 했습니다. 소령이 그렇게 대답했다. 


 “ ...미안, 미안한데, 이해가 잘 안 되는데. ”
 “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은, 코비 씨는... 오늘 죽습니다. ”


 ...어이가 없군. 대령은 한평생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 ...뭐 때문에 죽는데요? ”
 “ 모릅니다. ”


소령이 서 있는 문 바깥에서도 대령이 한숨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를 몇 분.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대령이었다.


 “ 코스톨라 씨, 비켜요. ”
 “ ..예? ”
 “ 내가 문 하나 못 부술 것 같아요? ”
 “ ....아닙니다. ”
 “ 그럼 비켜요. ”

 

  ... 그럴 수 없습니다. 소령이 스르르 무너지며 주먹으로 문을 한 번 퉁 하고 두드렸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다시 한 번 그 말을 반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대령은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새벽에 악몽을 꾸었다더니 많이 불안한 모양이구나, 하면서. 우선 나가면 품에 끌어안고 달래주고, 어떻게 된 일인지 천천히 물어보자... 하면서 문을 부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쿵 쿵 하고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문이 떨어져 나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소령이 방해 같은 것을 했던 것 같기도 했으나 대령의 완력에 비하면 아주 아주 연약했으므로. 여전히 손에 수갑을 찬 채 방 바깥으로 나온 대령은 문 앞에 서 있던 소령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히 희고, 창백하고, 희멀건 얼굴. ...다만 미소가 없었다. 겁에 질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일그러진 하얀 얼굴. 


 “ 코스톨 - ”


 퍼억!!!


 한 걸음 뻗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령의 위를 덮쳤다. 갑자기 세상이 시꺼매졌고... 그렇게 끝이었다. 끝. ....아니, 그 전에 소령이 무어라 말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아무튼 그의 끝은 그것이었다.

 

 

 

 소령은 그 날 새벽 다시 눈을 떴다. 13일의 새벽이 언제나 그러했듯 푸르고 어둡고 차갑다. 가라앉은 다갈색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 반대편 침대로 향한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 안에는 대령이 잠들어 있었다. 소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령의 침대에 살짝 엉덩이를 걸쳤다. 희미한 새벽빛에 드러난 분홍색 머리카락을 슥 쓸었다. 이번에도 살리지 못했구나. 

 소령은 계속해서 대령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이제는 버릇 같은 것으로 굳어져 버린.

 

  아무튼 다시, 13일의 금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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