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가 인도해 준 길
아카리
문호 스트레이독스
나카지마 아츠시 X 아카리
'배고파, 쓰러질 것만 같아, 추워...'
여긴 어디지? 나는 왜 이런곳에 혼자 있는걸까? 왜 쓰러져있었던 거야?
나는, 정말 어렸을 적부터 고아원에서 살아왔다.
부모의 따뜻한 애정같은 것도 당연히 모르면서 살았고, 고아원 내의 환경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틈만 나면 폭행과 욕설을 일삼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밥이든 잠이든 충분하게 만족해주지도 않았다.
'이런 밥만 축내는 녀석같으니!!!'
'자,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츠시, 넌 정말 쓸모가 없다. 살아있을 자격조차 없어!!!'
분명 나는 그날, 고아원에서 또 원장에게 맞아서 숨어서 자고있었을텐데, 정신을 차려보고 주위를 살폈을 때엔, 나는 깊은 숲 한가운데에 혼자 고립되어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겨울이라 눈이 오는 숲의 바람은 칼날처럼 날카로이 차가워서 내 피부를 베어내는 것만 같았다.
이 숲에 누가 살 리는 없었고, 겨울이라 동물들도 동면, 겨울잠에 들어가는 시기라 아무도 없는 어두운 숲은 고요해서 더욱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눈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맨발이라 추위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어왔다. 안그래도 고아원에서 얻은 상처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찌릿한 고통까지 더해지니 고문같았지만 이정도 고통쯤, 살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참아낼 수 있었다.
주위의 먹을 것은 당연히도 겨울이라 찾기 힘들었다. 나무에 열매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강은 얼어붙어서 낚시하기조차 어려웠다. 맨발로 얼어붙은 강 위에 있기도 불가능했다.
"저기, 누구 없어요...? 누가... 들린다면, 대답을..."
이런 추운 겨울의 어두운 숲 안에 누가 있을리가 없었다.
무의미한 희망을 걸어보아도 그 말에 대답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에 나무들의 나뭇가지가 부딪치는 소리 뿐.
무의미한 희망까지 밟힌 뒤에 오는 절망이 더 쓴 법.
숲을 돌고 돌아도 거기서 거기. 얼마나 깊고 넓은 곳인지 헤아릴 수 조차 없는 곳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이용해서 계속 길을 따라 걸었지만, 무언가가 나올 기미는 없었다.
목이 타들어가, 물 마시고 싶어.
배고파서 장이 틀어질것만 같아, 무언가를 먹고싶어.
너무 걸어서 다리가 아파, 쉬고싶어.
하지만 이것을 전부 충족시키기에 이 숲은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었다.
잠결에 고아원을 탈출했다고 해도, 이거야 고아원과 다를 게 뭐가 있는건가.
"아윽.. 발에서 피가... 언제부터...?"
눈길을 걷다가 발의 감각이 무뎌진 모양인지, 발바닥이 베인 것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이 상태로 더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신님, 너무 가혹하네요. 제가 살아생전,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
제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던 겁니까? 그렇다면 절 만들어주신 이유는 무엇이지요? 왜 저를 이 잔인한 세상에 버려두고, 방치해둔 겁니까. 고아원보다, 이 숲에 저 혼자 있다는 사실보다 당신이 더 무섭고 원망스럽습니다.
이대로 혼자, 세상을 저주하면서 죽을겁니다. 행복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주지 않은 당신을 원망합니다.
태어난 것조차도 축복받지 못하는 저는, 이제 지쳤다구요. 힘도 없고..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리는 없으니까..
지겨웠던 세상은 이제, 바이바이.
[~]
"...뭐지, 방금 그 새 소리는... 환청인가..?"
[~~~]
"환청이, 아니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은 채 나무에 기대어 앉았을 때, 저의 귓가에 새의 노랫소리가 맴돌았습니다.
이제 드디어 죽을 때가 된걸까, 하며 눈을 떠보았을 때, 저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작고 하얀 새가 제 눈 앞에 있었습니다. 마치 눈덩이같은 하얀 새였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건지 몸집이 작았고, 하늘 높이 나는 것도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그 작은 새는 날면서 저의 주변을 돌더니, 어디론가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저에게 길을 안내해주듯이..
저는 이상하게도 그 작은 새를 먹고싶다는 생각보다, 그 새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다친 발도 잊은 채 새를 따라갔습니다.
'저 새를 따라가면 난 어떻게 되는거지? 혹시 길을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저승을 안내해주는 사신?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알 것 같아.
이 새를 놓치면 난 진짜로 죽을거야.'
그 새를 따라가면서 몇 번이나 넘어지고, 다쳐도 끝까지 쫒았다.
작은 새를 쫒아 도착한 곳은, 이상한 장소였다.
겨울인데도 나무에 나뭇잎이 푸르게 난 곳이었고, 꽃이 피어있었다. 그리고 그 앞엔 강이 얼어붙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다.
마치 이 공간만이 겨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넋을 잃고 그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작은 새는 어디론가로 사라져있었고, 그 대신 누군가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비쳐보였다.
잘 보니, 나뭇잎처럼 푸른 눈을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강에서 물을 뜨고, 나무들을 향해 뿌려주고 있었는데, 나무들에게 향하는 물은 빛을 반사해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당황해서 눈을 피해버리고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말았지만, 그 아이는 경계도 하지 않고, 다가오지도 않고, 물을 뿌려준 나무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무심코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나는, 그 아이와 또 다시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렇게 숨어서 볼거면 차라리 옆에 와서 보고있지 그래? 다 보이거든."
"미.. 미안..."
"너도 버디가 길을 안내해줘서 온 거지?"
"버디...?"
"네가 쫒아왔을 하얗고 작은 새 말이야."
그 아이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해왔다. (그런데 '너도' 라는 건.. 나 말고도 또 누군가가 왔었던걸까?) 그 아이는 신비한 느낌에 예쁘장하다기보단 조금 귀여운 아이였는데, 얼굴은 영 웃고있지 않았다. 당연하려나, 어찌보면 난 이방인인데.
그 아이의 말에 따르면, 그 숲은 누군가가 자주 길을 잃기 쉬워서, 미아들을 출구로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버디가 미아를 찾고, 자신은 길을 잃은 사람을 보살펴주고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면 분명 숲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이 곳의 존재를 알고 있을텐데... 왜 아무도 모르는거야?"
"간단해. 기억을 지우는 거지."
"그렇구나.. 그럼 내 기억도 지울거야?"
"당연한 걸 묻고 그래."
"내 이름은 아츠시야. 너는?"
"어차피 잊어버릴텐데. 이름 알려줄 필요 없어."
"그래도 내 이름은 너에게 기억되는걸. 기억을 잃는다고 해도 괜찮아. 내 마음에 새겨둘게."
소용 없을텐데.. 뭐 이리도 착해빠진 아이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굳어진 표정은 조금 풀려진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내 이름은 아카리야. 이 숲의 미아들의 등불이 되어주는 존재.
"그렇구나. 등불, 아카리..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배고프겠지, 저기 식사 있으니까 먹고, 다친 곳은 흐르는 강물에 씻으면 깨끗이 나을거야. 그리고 뒤돌아보지말고 버디를 또 다시 따라가. 그럼 나갈 수 있어."
"그럼 이제 널 못 만나는거지? 잊어버리고.."
"당연한 걸 묻는 게 너의 특징이니?"
아카리의 무미건조한 말에 머쓱해진 기분이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야기하면 즐거워. 같이 있으면 기뻐. 널 잊어버리는 건 슬퍼.
이상해.
같이 있고 싶어.
너와 같이 있고 싶어.
내 욕심이란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안 되는 일이란 것도 알고 있어.
그 생각이 들어버려선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카리는 나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나무에게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물을 뿌려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리니까.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등져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한 순간이라도 더 너의 모습을 새기고 싶어.
"나 있지, 행복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아."
"부럽네."
"여기에 있으면서 행복한 적 없었어?"
"한 순간도."
"그렇구나..."
"말 많네. 빨리 가서 발이나 씻어. 아프지도 않아?"
"맞다..!! 잊고 있었어..!!!"
'이 아이는 대체... 어떤 녀석인거야...?'
나는 아카리의 말에 다친 발을 흐르는 강물에 담궜다. 조금 따끔한 느낌이 들더니, 금새 다친 발은 언제 다쳤냐는 듯이 깔끔하게 나아있었다.
"신기해..!! 이 강물...!!"
"이거 신어."
"신발 선물해주면 도망간다던데.."
"......."
"농담이야. 여러가지로 고마워."
'고맙다.. 라는건가.'
여태까지 많은 미아들을 봐왔지만, 이런 녀석은 처음이다.
행복을 몰랐다면서 따뜻하게 웃을 줄 아는 녀석. 고맙다고 하는 녀석.
딱딱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는 녀석.
경계심이 없는 녀석.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녀석.
내가 누군가에게 이름을 알려준 녀석.
이 공간보다 신비한 남자아이.
나와 있어서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들린다.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 같은것과 같이 있어서 즐겁다고?
네가 내 실체를 알면 그런 말을 해줄까?
네가 나와 같이 있어서 즐겁다고 생각해줄까?
"며칠 굶었냐, 천천히 먹어. 체해."
"며칠 굶었는데?"
'진짜냐.'
"나 여기서 너랑 같이 있으면 안 돼?"
"말이 되는 소릴."
"너랑 같이 있으면 행복이 뭔지 알 것만 같아."
"필요 없어. 이제 돌아가."
"너도 외롭잖아."
외롭다?
..내가?
그럴 리가. 그럴리가 없어.
네가 착각하는 거야.
아는 척 하지마.
처음 만난 미아가 말이야.
"그럼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거야?"
"안 슬퍼."
"웃을 줄 모르잖아."
"당장 이곳에서 나가."
"나는"
"시끄러워."
"알 수 있어."
"듣고 싶지 않아!!!"
"나는 네가 좋으니까."
눈 앞이 흐려진다. 눈에서부터 무언가가 떨어졌다.
물..?
아니, 눈물이다.
왜 갑자기?
감정 같은건 이미 버렸는데.
아, 이젠 틀렸어. 내 몸은 감정을 버틸 수 있는 몸이 아냐.
이게 마지막이 될거야. 그 녀석에겐 보여줄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 같이 있고 싶었어.
누군가의 기억에 남고 싶었어.
누군가의 행복이 되고 싶었어.
"아츠시, 여기서 나가야 해. 이젠 여기는 더 이상 열리지 않을거야. 네가 나가지 않으면 너까지 존재가 사라지고 말거야."
"그러면, 너는.. 너는 어떻게 되는데?"
"어디론가로 멀리 사라지고 말겠지."
"그럼 나도 너랑 같이 사라질래."
"..너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네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다니까?"
"날 기억해줄 사람은 없어. 어차피 나는 널 만나기 전에는 세상을 원망하면서 죽으려고 했었어.
행복이란 것도 모르고 살았어. 너처럼.
그리고 네가 없으면 이제 난 혼자서 살 자신이 없어. 네 기억이 없는채로 살 바에는 네 기억을 간직한 채로 죽고싶어."
이젠 무리다. 되돌릴 수 없어.
후회한대도 돌려보내지 않을거야.
내가 있던 푸른 숲의 빛이 사라져가고 있고, 내 몸체도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
그리고, 너의 몸체마저.
이래도 되는거니, 너는?
죽는 게 두렵지 않은거야?
너는 이대로도 행복하니?
"너는 왜 이런 무모한 길을 선택한거니."
"무모해도 후회하지 않을거라고 자신하니까."
역시나 너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눈물이 흐르는데, 웃고 있어.
네 덕분일까?
이게 행복이라는 걸까?
저기 멀리 버디가 잘 가라며 날갯짓하고 있는 것만 같아.
너와 함께 행복하고 싶어.
우리 이제 세상을 떠나서 행복하자.
따뜻한 빛깔의 숲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기억 속 어느 한구석에도 없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은 사람들에게 나뭇가지를 흔들며 인사하고 있었다.
그 숲에서 발견된 건, 작고 하얀 한 '쌍의' 새들이 죽어있는 것이었다.
한 아이가 그것을 발견해 묻어주면서 중얼였다
..숲이 울고있어.
"..아츠시? 그게 누군데 이 명부에 이름이 적혀있는거지? 사진도 없고. 버려야겠다."
"모르겠어. 하지만... 숲이 슬픈 비에 젖어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더 행복해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