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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하늘의 분노를 느꼈죠

향비파

 

노래의 왕자님(우타프리)

미카제 아이 X 현비파

  *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여러 개의 불행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지난 6개월이 그랬다. 아이가 연속된 오버히트와 시스템 문제로 라보에서 잠에 들고 나서 친구인 린과는 싸웠고 글은 써지지 않았으며 결국 한동안 쉬어도 된다는 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말았다. 오로지 집에 틀어박혀 갇혀버린 세상 속에서 아이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살아갔다. 아이가 잠이 든 후, 내 생활은 무척이나 단조로워졌다. 식욕이 없어 밥은 하루에 한 끼였으며, 책도 읽다가 덮는 일이 흔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디오에서 아이의 노래를 틀어두고 소파에 앉아있는 것으로 오전을 보냈다. 오후가 되면 산책이라도 나가볼까 싶어 밖을 보곤 하지만 생각에 그칠 뿐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숄을 두르고 주방으로 향했다. 물을 끓여 차를 우리고 찻잔을 내놓는다. 이것이 그나마 하루 동안 하는 일 중 가장 생산적인 것이었다. 글을 손에서 놓게 된 후에는 더욱 그랬다. 연이어 이어지는 불행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이미 수도 없이 깨달은 것이었지만 이번은 그 강도가 너무나 셌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은 오전 5시. 잠이 드는 시각이 새벽 2시인 걸 감안하면 너무 이른 기상이었다. 그러나 다시 잠들려고 해도 뒤척이게 될 뿐이었다. 의미가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나는 아침 7시까지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시간을 보낸다. 다른 생각을 하는 일 없이 그저 옆으로 누워서 벽을 본다. 그러다보면 어깨와 팔이 짓눌리기 마련이라 다시 반대쪽으로 눕는다. 그러면 방 안에 놓아둔 책장이 보인다. 누워서 시선이 닿는 곳에 아이의 앨범을 꽂아두고 그 앞에 둘이서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세워두었다.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카메라 쪽을 보고 웃고 있다. 저 사진은 8개월 전, 아이와 사귀기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찍었다. 둘 모두 일정을 맞춰둔 오랜만의 오프여서 나들이를 갔다.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카페 안에서 내 제안으로 찍었다. 핸드폰 화질이어서 디테일한 부분은 조금 흐릿했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우울한 기분도 조금 날아갔다. 7시에 알림이 울리면 일어나서 오디오를 켠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핸드폰은 하루에 두 번 울린다. 점심시간에 레이아에게서 한 번, 오후 세 시에 미즈키에게서 한 번. 린과 싸우기 전까지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린을 화나게 하기 전까지는 하루에 세 번 울렸다. 처음 세 달은 전화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받지 않았다. 그러면 어김없이 문자가 왔다. 점심시간, 정확히는 경시청의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레이아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화면 위로 뜨는 사카즈키 레이아를 보다가 한숨을 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비파, 시간 괜찮아?’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겠어. 무슨 일이야?”

  ‘나 이제부터 휴가거든.’

  “휴가?”

  수화기 너머로 강력1반 팀원들이 하나같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팀장님이 휴가래! 들었어? 휴가란다! 우리는? 일해야겠지. 팀장님만 휴가인 거야? 그런 것 같은데. 치사해! 팀장님은 휴가 쓰긴 하셔야지. 맞아, 5년 동안 한 번도 휴가 안 쓰셨잖아. 청장님이 휴가 소리 듣자마자 유레카를 외쳤을지도 모를 정도인 걸? 우와, 진짜냐. 선배님은 좀 쉬셔야 하긴 해. 맞아, 맞아. 그 말들을 듣고 있던 레이아가 일들 하라고 말하자 소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사랑 받네.”
  ‘시끄러운 녀석들일 뿐이야.’

  “그래서 무슨 일이야?”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별로 생각 없는데.”

  대답하자마자 레이아가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지금 이마를 짚은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터였다. 수화기 너머의 팀원들 소리가 아예 줄어들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범인 취조하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했다.

  “미즈키나 린이랑 같이 보러가는 게 어때?”
  ‘너 말이야,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거야?’

  “나가고 싶지 않을 뿐이야.”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있을 텐데 햇빛마저 받지 않으면 어떻게 버티려는 거야? 건강은 쉽게 무너져.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기에 몸마저 망가지면 어쩌려고?’

  “어떻게든 되겠지.”

  ‘그 말, 미카제씨가 들었으면 화냈을 거야.’

  ‘…알아.’

  밥은 하루에 세 끼를 잘 챙겨먹어야 하며, 밖으로 나가서 활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을 터였다. 물론 아프면 옆에서 간호해주겠지만 동시에 화를 내며 걱정하겠지. 아이는 내 안전과 건강에 대해 얘기할 때면 유리를 대하듯 말했다. ‘송로봇인 나와 달리 너는 인간이니까. 금방 상처 입고, 병에 걸리는 약한 인간이니까. 내가 지켜줘야 해.’ 그것이 못내 기뻤지만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아이 자신은 돌아보지 않는 말이었다. 나를 아이가 지켜준다면, 아이 자신은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나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돌봐달라고 말한 덕에 평소에 챙기던 것보다 더 챙기기는 했지만 언제나 아이에게 있어서 1순위는 나였다. 그래서 내가 아이의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박사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물어보고 더 이상 오버히트가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그럼에도 잠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무력함이 지금 나를 옥죄고 있었다. 레이아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미카제씨가 돌아오면 네 건강을 제일 먼저 살필 텐데, 이대로라면 병원에 끌려갈 거야.’

  “알고 있어.”
  레이아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뱉었다. 곧이어 맘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다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문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오지 않았다. 분명 지금쯤 다시 자리에 앉는 레이아를 보며 팀원들이 왜 안 나가냐고 말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핸드폰을 다시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그 때, 진동이 울렸다.

  “레이아인가?”

  다시 확인해보니 담당자인 세리에게서 온 문자였다. ‘선생님, 인터넷 보지 마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유명한 비평가가 2개월 전에 억지로 냈던 글에 대한 비평을 SNS에 올렸는데 그게 엄청난 화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세리에게 받아본 비평가의 글은 참혹할 정도로 내 글을 해체해놓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말이 오고 가고 있을지 대충 예상이 갔지만 나는 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비평가의 글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내 글을 마음에 들어한 사람들 간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모두 살펴보다가 현기증을 느끼고 소파에서 일어섰고 그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닫혀가는 청각 사이로 거실에 가득한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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