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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날의 장례식

벹베벹

 

단간론파 어나더

킨조 츠루기 X 타치바나 코토네

- 드림주 사망 소재 有.

“야, 킨조.”
“……또 대답하지 않을 셈이야?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고… …하아, 이제 됐다. 더 이상 뭐라 하기도 지치니 어디 니 마음대로 해봐. 오오토리가 네 서류는 자기가 처리한댔으니 알아두던지. 난 간다.”

“……레이 쨩, 엄청 화난 거 같은데… 대답 안해줘도 괜찮은거야?”

문 밖에서 날카롭게 화를 내던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갈 즈음, 타치바나가 조심스럽게 킨조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 사람의 장례식에 다녀오고, 그 뒤에 계속 업무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여버린 탓에 한동안 메카루는 물론이고 오오토리에게도 쌀쌀맞게 대해버렸기 때문이었는지 둘은 방에 찾아와 킨조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지만 킨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도 잠가놓은채로 대꾸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일은 제대로 하고 있었지만, 어째 킨조를 포함한 세 명의 간부 사이에서는 묘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꾸도 않는 킨조에게 오오토리와 함께 매번 찾아오던 메카루는 조금 전 드디어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든 것인지, 모든 것을 포기한 목소리로 마음대로 해보란 말을 하며 돌아섰다. 킨조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킨조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타치바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마냥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돼, 코토네.”
“싸우는 건 나빠…! 오오토리 군도 그렇지만… 레이 쨩은 츠루기 군을 걱정하고 있는 걸. 말투는, 조금 날카롭긴 해도ㅡ”
“정말 괜찮대도. …네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자, 이리 와.”

걱정스레 말을 잇는 타치바나의 말을 끊듯이 킨조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금새 칼 같던 단호함을 감춘채로 다정히 타치바나를 보며 팔을 벌렸다. 타치바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어쩔 수 없나, 하는 표정을 짓고는 조심스럽게 킨조의 무릎 위에 폭, 하고 앉았다. 그런 타치바나를 정말로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킨조는 타치바나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항상 치사해..츠루기 군은. ……그으, 계속 말해서 미안한데.. 레이 쨩.. 너무 미워하진 말아줘. 나처럼, 츠루기 군을 걱정하고 있는 거잖아?”
“하하, 알고있다니까. …이제 정말 겨울이네. 많이 춥진 않아?”
“앗, 응! 춥지 않게 봐, 겉옷도 잘 입고 있고… …그러는 츠루기 군, 내가 준 장갑이라던가… 나갈 때 잘 쓰고 있어? 손 차가운 편이니까. 신경쓰지 않으면 금방 손이 얼어버릴거야?”
“응. 잘 챙기고 있어. …말 나온 김에, 잠깐 산책이라도 가지 않을래?”

창 밖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킨조는 약간 잿빛을 띄는 하늘을 바라보며 타치바나에게 산책을 권했다. 추운 겨울이라고 방금 말했는데 산책이라니, 조금은 의아할 법도 하지만 타치바나는 킨조와 함께한다는 것이 마냥 좋았던지 봄 햇살 마냥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얼른 나가자는 듯이 킨조의 무릎에서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걸어가선 킨조의 코트와 장갑을 가져왔다. 킨조는 그런 타치바나를 보며 자신 또한 싱긋 미소를 짓고는, 타치바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러운 킨조의 행동에 얼굴이 진한 봉숭아 빛으로 물든채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타치바나는 킨조의 눈엔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했다. 킨조는 다정한 눈빛으로 싱긋 웃으며 장갑을 낀 손을 타치바나에게 내밀었다.

“자, 갈까.“


-


“으아, 입김도 나올 정도구나..! 진짜 춥다, 그치?”
“그러게. 나야 원래 손이 찬 편이니 그렇다 쳐도… 네 손까지 차가워질까 걱정인데.”

쌀쌀한 겨울 바람이 빠르게 코와 귀를 스쳐지나갔다. 구름들도 잔뜩 끼어서인지 회색 빛으로 가득한 하늘은 아무리 해도 보통 산책 나올만한 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지만, 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신경쓰일 점이 아닌 듯했다. 서로 아무런 대화 없이 조용히 걸어가다가 시선이 마주친다면 살짝 미소 지어주는, 크게 무어라 말할 것이 없는 소소한 산책이었지만, 시간이 멈추길 바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킨조는 조용히 타치바나의 손을 슬 잡았다.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미열에 킨조는 마냥 행복했다. 타치바나 또한 그랬는지, 손을 잡은 순간에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은 어디가고, 금새 밝게 웃으며 킨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둘 사이에, 마치 둘의 따스한 분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그맣게 하얀 눈송이가 스쳐지나갔다.

“! 츠루기 군, 이거 눈이지? 와아, 올해 첫 눈이야! 조금 쌓일려나? 불편하긴 해도 볼 땐 예쁘니까 약간이라도 쌓이면 좋을텐데…”
“아아, 그러게. 정말, 예뻐.”
“……츠루기 군, 있잖아…”

나풀나풀 내려오는 새하얀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닥에 조금씩 새하얀 색들이 쌓여갈 즈음, 타치바나의 손이 힘없이 킨조의 손에서 흘러내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킨조가 제 손을 떠난 온기에 고개를 돌려 의아한 표정으로 타치바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거냐며 묻기도 전에, 타치바나는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킨조는 타치바나의 목소리를 따라 타치바나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표정은 아까와 같이 밝지 않은 사뭇 진지함이 담긴채로, 맑은 눈동자는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할 말이 있기에 이렇게 조용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걸까. 킨조는 예삿일이 아니라 짐작하곤 타치바나에게 다가가선 다정한 손길로 타치바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나를, 이제 놓아줄 때가 되지 않았어?”

째깍.

우연인걸까. 공원에 있던 낡은 시계탑은 유독 큰 소리를 내며 시계침을 움직였고, 그 소리에 놀란 새들은 푸드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킨조의 온 사고회로와 몸이 영상의 일시정지를 누른 것마냥 멈춰 굳어버렸다. 영리한 킨조는 타치바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킨조의 심장은 멈춘 듯 고요하다 점점 쿵쿵거리며 크게 떨려왔다. 킨조는 그 반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츠루기 군… 계속 이러면 안돼… 이제 정말 나를 놓아줘야해. 물론 나도 츠루기 군이 날 놓아주는 건 슬프지만… 계속 이러는게 걱정된단 말야…”

아냐.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레이 쨩이랑 오오토리 군도 츠루기 군을 걱정하고 있다구? 벌써 시간도 이렇게 흘렀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거야? 왜 메카루와 오오토리 같은 말을 하는거야?

“나, 쭉 생각하고 있었어… 정말 이러고 있는게 맞는 걸까, 하고…”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네가 그럴리가 없잖아. 절대로.

“아쉬운 건 알지만… 나도 헤어진다는 건 슬프지만… 츠루기 군이 그럴 수록 걱정 돼. 분명 마음이 조각조각 부숴질거야…?”
“……아,”
“왜냐면, 나는…”

이러지마, 더 이상… 더 이상 말하지 마.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리고 너는ㅡ

“ㅡ나는 이미, 죽었잖아…?”

쨍그랑ㅡ……

ㅡ킨조 츠루기라는 사람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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