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기억 속 오르골이 연주한 피의 자장가
벹베벹
암살교실
호리베 이토나 X 우라사카 키리노
- 드림주 사망 소재 有.
- 원작 스포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어머어머, 이토나 군ㅡ 이런데서 자면 안돼ㅡ?”
서서히 잠들어가는 이토나의 정신을 깨운 것은 키리노의 목소리였다. 이토나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몸을 일으키곤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목재들로만 이루어진 낡은 교실. 내가 교실에서 잠들 뻔한건가. 이토나는 습관적으로 눈을 가볍게 비볐다. 최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내려오는 눈꺼풀은 무겁기가 그지 없었다.
“후후, 아무래도 내 자장가가 잘 들었나 보네?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래~ 어디 봐봐. 우리 이토나 군, 피부도 거칠어진 거 같잖아? 잘 자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너무 과장됐어. 단순한 수면 부족으로 너무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되잖아.”
키리노는 늘처럼 조금은 과장 된 듯한 말투로 이토나의 양 볼을 어루어 만졌다. 이토나는 늘상 있는 일이니 별 생각이 없다는 듯, 담담히 키리노의 손을 자신의 뺨에서 떼어내었다. 키리노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가 금새 싱긋 웃으며 「자장가 다시 불러줄까?」 라며 이토나에게 물었지만, 이토나는 고개를 슬 저었다.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것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긴 했지만, 자장가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왜 나는 우라사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거지? 이토나는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으며 어찌되든 상관 없나,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만 그렇게 뛰어난 노랫소리가 아님에도, 이토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며 가져온 오르골의 음악소리와 어울리는 키리노의 목소리가 꽤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음은 확실했다.
그리고, 조금 전만해도 생생히 보았던 그 모든 것은 한 환상에 지날 뿐이었다. 꿈은 너무나도 생생해 마치 현실이었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꿈은 벌써 7년도 넘어갈 즈음의 예전 이야기. 게다가 이토나의 옆을 떠난 사람의 꿈이었다. 보통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 얼굴, 목소리는 전부 약간의 시간만 지나도 점점 흐려져만 간다는데 이토나는 전부 생생하게, 마치 지금도 제 옆에서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낼 것만 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딱히 크게 정신적으로 망가진 것도, 과거를 계속 붙잡고 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나의 마음은 구멍이 뚫린채로 채워지지 않는 듯했다.
이토나는 오늘은 공장의 일은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그 교실로 가보고 싶어서, 라는 이유였다. 살생님이 죽은 이후로 상금으로 사들인 E반 교사는 모두가 관리하고 있었기에 그 때 그 날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지만 살생님이 죽을 그 때도, 다른 아이들이 그 곳을 청소할 때도 언제나 우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어찌 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살생님이 죽은 그 날, 살생님만 죽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토나는 운동장 한 가운데에 섰다. 여기서 너는 그 짧은 생을 마감했지. 나를 위해서. 이토나는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 자리를 손으로 쓰담듯 내밀었다. 이토나의 표정은 언제나와 똑같은 무표정이었지만 어딘가 착잡하고 공허한 듯한 느낌이 담겨있었다.
우라사카 키리노는 7년 전 이 운동장에서 16년의 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호리베 이토나란 인물을 위해서 어린 몸을 내던졌다. 그 사실이 키리노를 떠올리는 이토나를 더 착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토나는 무심한 듯, 관심이 없는 듯 했지만서도 키리노가 자신을 향해 열렬히 애정을 표현한 것에 대응하는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작게 움직이는 사랑이란 감정을 서툴게 전하기도 전에, 자신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알기도 전에 제 곁을 떠나버렸기에 이토나는 애절함이라는 감정 또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토나에게 달려드는 야나기사와를 저지하려 키리노가 달려들었고, 그 순간 키리노의 몸은 곳곳이 뚫려버려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카야노를 살린 살생님조차도 어찌 할 수 없을 속도였다. 자신의 눈 앞에서 다행이라는 듯 미소 지으며 무너져 내리는 그 몸이 이토나에게는 말로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달려든걸까. 뭐가 다행이라는 듯이 그렇게 웃으며 마지막을 장식한 걸까.
“……좋아해. 사랑해. 아주 많이.”
덤덤하게 내뱉었다. 제 성격에 애정어린 표현은 잘 어울리지 않음에도 이토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7년 전의 너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본심을 전하고 싶어, 라는 생각에서 온 듯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로 늦었다는 말은 아마 지금을 위한 것이리라.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향해 애정을 전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으로 이성을 마음에 두었던 소년 이토나는 청년이 될 때까지도 그 감정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처음으로 마음에 둔 사람을 이리도 허무하게 놓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좀 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마음 속에서 조금씩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뒤로 하고, 이토나는 몸을 일으켜 교실로 향했다. 3학년 E반이라는 표시가 적힌 팻말이 달린 교실 문을 열었다. 언제나 그대로였다. 그리고, 두꺼운 책이 올려진 한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졸업하는 E반 학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살생님이 만든 가이드북. 이름 칸에는 우라사카 키리노라는 이름이 버젓이 적혀있었다. 네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너도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며, 두께가 너무 두껍다며 툴툴거릴 수 있었을까. 이상하게도 이토나는 이 교실에 온다면 키리노에 대한 감정이 더욱이 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붉어질 것만 같은 느낌에 미간을 억지로 살짝 찌푸리고는, 미리 들고왔던 꽃 몇 송이와 사진 한 장을 덤덤히 책 위에 올려두었다.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는 엉망이었지만, 이토나와 함께 찍었다며 즐거운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키리노가 좋아하던 사진이었다.
왜인지 오늘 꾼 꿈이 뚜렷하게도 다가와, 그 날 키리노가 불러주었던 자장가가 그리워지고 있었다. 너의 그 목소리 하나하나를, 같이 들려주던 오르골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뇌 속에 천천히 스며들어갔다. 이미 아득히 먼 기억 속의 너를,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자장가가 기억시켜주는 듯한,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