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예쁜 미소 짓지 말아요
피노
다이아몬드 에이스
쿠라모치 요이치 X 코미나토 마야 X 카네마루 신지
세상을 덮었던 하얀 눈이 차츰 녹아 사라지고, 어느덧 널 닮은 분홍빛이 세상에 가득 찼다. 흔히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계절이라고 하는 봄. 그 말처럼, 속에 작은 희망이 피어나 어울리지 않는 설렘을 만들어냈다.
“올해에도 또 같은 반이네?”
“마야, 너… 갑자기 얼굴 들이밀면 놀란다고.”
별 생각 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두 눈에 벚나무를 담고 있던 때에, 네가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벚나무와 같으면서도 다른 분홍빛이 새로이 눈에 담겼다. 요즘 들어 가장 눈에 밟히고, 좋아하게 된 색상이었다. 그야, 모치 놀라는 거 엄청 웃기니까. 그치 윳키? 자신의 앉은키에 시선을 맞추려 굽혔던 허리를 곧게 피더니 제 옆의 남자에게 물었다.
“평소에도 웃기게 생겼지. 그보다 넌 뭐냐, 라고 시선으로 말하지 말아줄래. 꽤나 상처거든?”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장난 섞인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미유키에게 비웃음을 보이다가도, 울상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금방 나도 모르게 표정을 찌푸렸다. 모치 못생긴 얼굴 나왔다. 옆에서 미유키와 나를 보며 작게 킥킥대던 네가 구겨진 내 미간을 꾹꾹 누르며 웃음을 흘렸다. 그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풀린 것인지 입가에 미소를 자아냈던 것 같다. 미유키에게 또, 또 둘만 있으면 웃음만 넘치지. 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야 모치는 너보다는 날 더 좋아하니까~ 그렇지?”
네 말에 작게 움찔했지만, 눈치 없는 너라면 모르겠지. 하는 심정에 의자를 뒤로 까딱이며 둘 다 똑같다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었다. 수업 시작할 것 같으니까 전부 내 자리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말도 함께. 투덜대며 제 자리로 돌아가는 네 모습이 웃기면서도 귀여워 작게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탓에 바로 다음 쉬는 시간에 내가 웃겨? 라며 잔뜩 장난이 담긴 짜증을 들어야했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새 학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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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둘은, 도쿄 시니어의 토죠 군이랑 카네마루 군…”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어?”
자율 연습이 시작되고 얼마나 됐을까, 부원들의 연습을 도우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네게 물었다. 틈틈이 새로 들어온 1학년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중이라고, 신입생이 너무 많아 외우기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네게 늘 고생이네. 라 답하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살짝 쓰다듬었다. 그에 네가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며 해맑게 웃더니 이내 저를 부르는 부원에게로 달려갔다. 멀어져가는 널 얼마나 쳐다보았을까, 그렇게 좋냐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미유키의 엉덩이를 발로 차버리고 다시 ~로 돌아갔다. 그렇게 티가 났나? 연습 탓인지, 누군가에게 감정을 들켰다는 부끄러움 탓인지. 화끈 달아올라 붉어진 얼굴을 좀처럼 사그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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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청춘드라마라도 찍냐? 보는 내가 다 안쓰럽다, 야.”
늦저녁 즈음, 자율연습 뒤 샤워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차에 미유키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눈치만 더럽게 빨라서 진짜. 괜한 억울함과 짜증에 머리를 털던 수건을 얼굴에 던져버렸다. 물론, 가뿐히 다시 나에게로 던지며 투덜거렸지만.
“내가 참견할 건 아니지만, 그렇게 흐지부지 네 감정 숨기기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거 모르지는 않을 거 아냐. 조금이라도 티를 내야 걔가 알아듣지.”
“딱히 티 낼 생각 없거든.”
어이구, 프로 짝사랑러 나셨네. 나름 진심어린 걱정이었을 텐데, 내 입에서 조금 퉁명스런 대답이 나오자 미유키가 말을 비꼬며 빈정거렸다.
“마야 걔한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겨봐라, 그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거 참 시끄럽네. 알았으니까 들어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털다가 미유키를 기숙사 쪽으로 밀었다. 안이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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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기에 편하면서도, 슬픈 감정을 가져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대로 접을 수 없는 감정. 애초, 너와 내가 같은 감정을 공유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가지지를 않았다. 그런 희망을 가졌다가는, 끝에는 무한한 슬픔과 절망만이 남을 테니까. 그렇기에 혼자 속으로만 조용히 품다가 언젠가는 버릴 감정이었다. 그런데, 감정을 접어야 할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을 몰랐지.
“좋아하고 있는 거 아냐?”
이기적이지만, 아니기를 바랐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네가 눈치채주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무참히 짓밟아주었지. 널 보아왔던 1년하고도 반년의 시간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그래도, 이 학교에서는 네 남매를 제외하고 나름 너와 가장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였는데, 그 자부심이 나를 더 무참히 짓밟았다.
“…그런 것, 같아.”
얼굴을 가린 두 작은 손 틈으로 보이는 불그스레한 두 볼.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동자.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표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널 생각할 때 나의 표정이 딱 그렇다고 전에 들은 적 있었다. 비참함이 온 몸을 감쌌다.
‘마야 걔한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겨봐라, 그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그제야 미유키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이미 돌이키기엔 늦어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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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야구부의 챙겨야 할 부원. 그 다음에는 적당히 인사를 주고받는 후배, 그 다음으로는 어느 정도 장난도 주고받는 편한 사이. 원체 친화력이 좋기는 했지만, 단시간에 이렇게나 마음이 맞아 잘 지내게 된 것은 아마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카네마루 군이랑 꽤나 친하게 지내는 것 같네?”
언제였지, 일지를 쓰던 중에 유이가 내게 질문했던 적이 있다. 그 때에는 그냥 재미와 공감대가 맞아서 그랬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느꼈던 것은 아마 그건 호감, 조금 낯간지러운 말로는, 사랑?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싹튼 그 감정은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후였다.
“너 지금 모습 좀 어색하고… 소름 돋아.”
쿠라모치가 내 얼굴을 빤히 응시하다가 헛웃음을 자아내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얼굴을 째려보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당장에 알아차린 감정에 너무 혼란스러운 탓에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으면서도 계속 마음속에서 걸리던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그 기쁨에 작은 웃음을 계속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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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도 너의 행복을 바랐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네 행복만을 위해 노력했다. 노력한 모든 것들은 나의 절망과도 같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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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 카네마루 군한테 고백 받아서…”
“사귀기로 했다고?”
다 아는 결말을 굳이 네 입을 통해 듣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끊고 자기 할 말을 한다는 게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의 만개한 웃음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지금까지 봤던 네 웃음 중, 가장 예쁜 웃음이었다. 슬프게도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네가 그렇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 그걸 알게 되었으니까, 뭐, 아마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다른 건 다 괜찮아도, 널 바라보자니 문득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속에 꾹 담아놓고 네가 내 앞에서 떠날 때까지 전하지 못한 말.
ㅡ다른 사람도 아닌 내 앞에서, 그 아이를 떠올리며 그렇게 예쁜 미소를 짓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