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밤
마고
디아볼릭 러버즈
무카미 루키 X 카스가 미지메
※ 트리거 소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사랑이라는 말은, 그 얼마나 달콤하며 혀에 붙는 말일까.
사랑이 아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망가질 수 있을까?
"루키?"
미지메가 웃으며 바라보았다.
미지메는 크리스마스를 사랑의 날이라고 했다. 모두가 사랑을 받는 날이라고. 신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있어요~ 라며 옆에 있는 사람은 들을 생각도 없고 듣고 있지도 않다는 걸 보여주듯이 책에서 눈을 떼어놓지 않고 팔랑팔랑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데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혼자 주절주절…. 쓸데없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타인이 보는 것과 다르게 루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하나 놓치지 않고 전부 경청하고 있었다.
"가축 주제에,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면 좋겠네요."
내가 신이라면 루키가 바라는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 있을 텐데. 눈을 감고 조곤조곤 말하며 미지메는 루키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전 같으면 질색하며 밀쳤을 그였지만, 이제와서는 밀쳐내는 것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루키는 아담이 되기를 원하니까, 루키를 아담으로 만들어 줄 거에요. 허나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을 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건 퍽 짜증나는 일이었다.
"가축 주제에…."
더군다나 그녀는 이브가 아니었기에.
자신을 아담으로 만든다는 말은 자신을 다른 여자와 이어준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랑한다고 내뱉으면서 그 사랑은 오직 신이 인간을 사랑하듯 절대적인 사랑뿐, 다른 감정은 한치도 섞여 있지 않다. 입을 맞추는 것에도 다른 감정이 없다. ... 아니, 자신 앞에서만 다른 감정이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다른 이에게는 입을 맞추고 눈을 바라보고 몸을 섞는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자신이 바란다면 미지메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해줄 것이었다. 입을 맞출 수도 있고, 몸을 섞을 수도 있고.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이름만 부를 수도 있고, 자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가 원한다면 그게 누구든 그렇게 해줄 것이다.
그녀는, 모두를 너무도 사랑해서 땅에 내려오고 그들에게 목을 졸려 죽어도 그들을 사랑한 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이기 때문에.
루키는 갖은 상상에 읽히지도 않는 책에서 눈을 뗐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창밖을 보니 자신의 마음과, 지금의 이 상황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하얀색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루키와 함께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에요! 기뻐요! 마치 언젠가의 크리스마스는 함께 보냈다는 마냥 웃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 루키는 헛웃음을 흘렸다.
"다른 크리스마스도 보낸 적 없다만."
"앞으로 보낼 테니까, 괜찮아요!"
웃으며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대답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사랑스러운 입은 속을 뒤틀리게 하는 말만 한다. 너무나 사랑스럽고도 너무나 싫다. 사랑스러움은 독이다.
미지메는 자신이 틀어둔 캐럴을 작게 흥얼거리며 따라부르며 창문 너머로 하늘을 바라봤다. 루키는 곁눈질로 그것을 바라보며 곰곰 신을 죽인 인간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자신들의 신을 죽이고 신에게 못질한 어리석은 자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라는 작자들은 멋대로 사랑을 퍼주고, 책임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스러워서, 사랑을 줘서 사랑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고 그 증오는 쌓여간다.
마치 태양과도 같아 빛을 비춰주다가도 목을 타게 한다. 그럼에도 빛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들어. 결국, 남은 건 파멸뿐이다.
"루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눈이 마주치자 또 예쁘게 웃으며 바라본다. 언젠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면, 언젠가 남의 손에 그렇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지금.
지금.
내일이 온다면 분명 미지메는 자신의 옆에 없을 것이다. 어딘가로 날아갈 것이다. 누군가가 데려갈 것이다.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버릴 것이다. 지금 이렇게 손을 조금만 뻗어도 닿을 수 있는데.
"루키? 루, 윽!... ... ."
조금 더, 조금만 더. 미지메의 얼굴로 손을 뻗은 루키는 그 뺨을 어루만지는 듯하더니 손을 내려 목을 졸랐다. 루키의 손이 떨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미지메의 목이 떨리고 있는 건지. 루, 키... ... .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연약해서 곧 끊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고. 미지메는 늘 그렇듯이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눈으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눈으로 루키를 계속 응시하였다.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아무도. 오로지 고통받는 건 신을 사랑한 자들 뿐이다. 태양을 바라본 자들 뿐이다.
그렇다면 이 살의 또한 사랑이다.
계속해서 연약한 숨소리만이 방을 채웠다. 들려오던 캐럴은 어느샌가 더이상 노래로는 들리지 않아, 그의 귀에는 그것마저도 그녀를 죽이라고 재촉하는 소리로 들렸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발버둥 친다면, 그 사랑은 가짜라고 매도하고 안심할 수 있을 텐데. 네 그 사랑은, 입에 발린 달콤한 거짓말이라고. 좋을 대로 휘두르기만 하는. ...
결국, 루키를 계속 바라보던 눈동자는 그에게서 눈을 떼고 천장을 향해 올라갔으며 누가 떨고 있는 것인지 모를 떨림이 곧 멈췄다. 곧이어 들리는건 한사람만의 숨소리와 작게만 들려오는 캐럴이었다.
"… 아아."
루키는 이제 자신과 같이 차가워진 미지메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해주던 봄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던 몸이… 이제는 그의 것이다. 마치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지하로 끌고 간 하데스처럼. 차디찬 겨울로 그녀를 끌고 가 그가 독점해버렸다. 그는, 이제서야 그녀와 함께 있는 것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빼앗기지 않을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다.
"드디어 얻었어. 나의 이브, 나의. 내. … … 신."
둘의 밤은 더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더이상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을 것처럼. 신의 사랑 마냥.